[ 모든 성인 대축일 ]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 피에르 바야르의 『나를 고백한다』라는
매우 인상적인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스 같은 불의한 권력 집단에 저항한 의로운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묻습니다.
그가 각별히 주목하는 이들 중에는 나치스를 비판하다가 사형된,
뮌헨 대학교의 학생 셋도 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내밀한 느낌’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보여 준 그들의 모습에 대한 증언을 인용합니다.
“기소당한 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주 바른 자세로, 침착하고 고독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솔직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한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하고 쓴 것은 사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거예요.
단지 그들은 감히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저자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들의 확신에 찬 감정이 단지
동시대인들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역사 안에서
그들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확인해 줄 이들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현재의
폭력과 불의의 권력에서 자유로운 보편적인 정의와 인간성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저자는 그들이 고립감을 이겨 내고 꿋꿋이 올바른
일을 행할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의 가톨릭 신앙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 안에서 현세와 내세,
지상과 천국을 포괄한 영원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단지 죽은 뒤의 삶을 위한
‘영적 구원’에만 관련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선과 정의와 애덕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는 삶을 이끄는
원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결코 외롭지 않으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는 ‘이미’ 성인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주님의 길에
‘모든 성인’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성인들이 감지하고 의지했던 진리의 빛을 굳건히 따르도록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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