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
![]() 우리나라의 현대 수묵화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월전 장우성 화백의 수필집 『월전수상』에는 ‘흑과 백’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흑과 백은 절대 상반의 두 개의 원색이다. (중략) 그래서 이 두 원색은 어떠한 경우에도 혼동이나 착란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기에 옛날에서 현재까지 뚜렷한 대조를 표시해야 할 경우에 항상 흑백을 이용한다. (중략)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러한 색상 감각의 표준 의식이 흐려졌거나 삐뚤어져 버린 것 같다. 번연히 흰 것을 검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옻빛같이 검은 것을 눈빛같이 희다고 억지 쓰는 친구들도 있다.” 수묵화의 세계와는 달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들을 자주 만납니다. 판단을 해야 할 때 섣불리 자신의 직관에 의지하기보다는 찬찬히 관찰하고 경청하는 태도와,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자세가 인생의 지혜이자 현대 사회가 조화롭게 유지되는 조건입니다. 이처럼 인생사는 오히려 마치 경계를 꼭 집어 말할 수 없도록 미묘하게 색이 변해 가는 수채화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지혜’가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려면 역설적으로 그 중심에 근본적 원리에 대한 분명하고 타협 없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흑백 논리’로 삶의 복잡다단함을 재단하지 않는 관용의 태도는 섬세하고 호의적인 배려가 아니라 무책임한 상대주의나 자기 위주의 주관주의로 귀착될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흑이 백이 될 수 없는 수묵화의 세계처럼 우리에게도 삶의 최종 가치에 대한 양보 없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투신입니다. 이 ‘원리’에는 어떠한 모호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계명의 분명한 요구가 삶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수묵화의 은은한 운치를 느끼며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