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미술관

[격조높은 사랑]의 아취(雅趣) - 와토 Watteau

덕여 (悳汝) 2011. 9. 23. 21:59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격조높은 사랑]의 아취(雅趣)

 

와토 [Jean-Antoine Watteau, 1684.10.10~1721.7.18]

프랑스의 화가.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던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으로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네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놋그릇을 씻는 여인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달빛 속의 아를캥 황제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참새 둥우리를 든 사나이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두 쌍의 연인들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조각하는 원숭이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사랑의 모험을 하는 여인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화살을 빼앗긴 큐우핏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주피터와 안티오페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이탈리아풍의 놀이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이탈리아풍의 세레나데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조망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쟝 드 쥘리엔느의 초상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밀어를 속삭이는 아를캥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철부지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샹젤리제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키테라섬의 순례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와토의 작품. 129 x 194 cm. 1717년. 캔버스위에 유채.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로코코미술의 대표적인 회화작품이다.

키테라섬에 있는 비너스여신 아래서 구혼을 하는 연인들을 보여준다.

 

무심한 남자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음악 레슨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평화로운 사람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정원에서의 모임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화장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베네티아풍의 연회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정원에서의 모임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이탈리아 劇의 사랑(제르생의 간판)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프랑스 극의 사랑(프랑스 배우들)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프랑스의 배우들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성가족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사랑의 게임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파리스의 심판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깜찍스러운 아가씨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불안한 여인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장티이의 라 비에브르 강 / 와토 Jean A. Watteau(1684~1721)

 

 

북프랑스 발랑시엔 출생.

1702년 파리로 나와 당시 그랑드 오페라극장의 장식화가였던 C.질로에게 배우고

이어 장식화가 C.오드랑의 조수가 되어, 주로 인물사생과 희극배우들을 스케치했다.

오드랑은 당시 뤽상부르궁의 어용화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으로 궁전에 있는 루벤스나 플랑드르계 명화를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후 16세기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점차 로코코회화의 창시자로서의 작풍을 확립해나갔다.

 

1717년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된 기념으로 그린 《키테라섬의 순례》(루브르미술관 소장)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이 그림 속에는 와토 예술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왕조문화의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던, 밝고 우아하며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을 전개하여 ‘아연(:f?te galante)’으로 불리는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1720년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때, 가게의 간판그림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베를린 샤를로템부르크궁 소장)을 그리기까지 하였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안 가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전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밖의 작품으로 《전원오락》 《파리스의 심판》 《제우스안티오페》,

이탈리아희극에서 취재한 《질》 등 명작들이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로코코미술 [Rococo art]

17세기의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에 유행한 유럽의 미술양식.

로코코의 특색은: 그 말의 어원인 로카유가 조개껍데기 세공()이나 모양을 가리키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식미술, 특히 실내장식이나 가구류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실내의 각 부분 또는 가구의 형태 등에 조개 모양이나 아칸서스무늬가 도입되고

혹은 그것들의 조합이라고 할 만한 곡선무늬가 뒤얽혀 물결친다.

건축가들은 당시의 살롱 문화를 배경삼아 이런 곡선을 활용하여 실내공간 자체를 원형적

(타원형 또는 다각형)인 멋으로 처리하고 벽과 천장의 연결부분 또는

 벽과 벽의 연결부분에도 분절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구조를 고안했다.

직선 ·직각을 가능한 한 배제하여 부드러운 곡선이 자유롭게 교차하도록 만들고

벽이나 천장의 색채도 담백하고 우아한 색조, 예컨대 흰 바탕에 금색으로 곡선무늬를

안배하는 것 같은 배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런 것은 바로크가 지닌 중후성이나 오만성과는 다른,

경쾌하고 화려한 취향이며 로코코의 특색은 어디까지나 회화적이고 평면적인 데에 있다.

 

구월애/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