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The Passing of Korea (2)-Homer Bezaleel Hulbert

덕여 (悳汝) 2011. 8. 29. 11:40

 

 

 

[저자 소개]

Homer B. Hulbert 는 1886년 育英公院 교사로 (Gilmore, Bunker & Hulbert)으로 입국하였다.

育英公院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1891년 귀국하였다. 그리고 1893년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입국 하여 Korea Review 창간 하고 감리교 주관 삼문 출판사 책임자로 문서 선교에 힘썼다. 조선이 살아갈 방도는 "교육"뿐이라고 강조하며 교육 선도자로 조선민중 계몽운동을 한다. YMCA 창설을 착안하여 애썼다.

또한 고종 황제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고종의 밀사로 Washington에 파견되어 친서를 Ted Roosevelt에게 전하려 하나 Katsura-Taft 밀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한 Hague 만국평화회의에 세 밀사(이위종, 이상설, 이준) 파견에 적극 협조하였으나 일본의 간계로 뜻을 못 이뤘다. 이로 인해 일본정부의 눈밖에 나서 1906년 미국 소환형식으로 강제출국 당하였다.

은퇴하여 지내던 중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내한 하였으나 고령과 여독으로 그해 서울 청량리 병원에서 서거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사회장으로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 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 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y."

 

 
Photo & Text by Chum Jee, 6-29-2007

The Passing of Korea (2)

大韓의 滅亡

Homer Bezaleel Hulbert

Doubleday, Page & Company,

New York, 1906


책 寫眞 으로 보는 옛 朝鮮 모습


Grocery 상점. 마른 오징어와 문어, 마른굴과 조개,
땅에 대추, 감, 밤, 생강, 등등이 진열 되이따.


조선 사람 삽질 하는 모양새. 非效果적 이란 니야기


우물에서 물 운반 하는 사람


배 (쪼각배) 만드는곳. 造船所라 하면 과장이다.


上: 갓, 망건 고치기. 下: 홍두깨 만들기


물레 방아간. 외국인의 기지로는 이런 생각 몬한다(?)


금 채취 하는 사람 들


선비들의 활 쏘기 시합


장이야 ! 멍이야 !


그네 타기. 학질 떼는데 직효란다(?).


왕궁 화재 지키는 "해태". Guardian Fire Stone Dog.


上: 은진 미륵불. 下:장승과 성황 돌담. 행운 기원 하면서- -


좌:戰爭神 옹호하는 조각상. 우: 장승. 천하 대장군은 어드메 간나?


옛 왕궁의 멋찐 장식. 서양인과 조선인이 보인다.


신분 노픈 녀인의 낮 출입. Moslem 풍습 달맛 단다.


빨래 하고 ?에 마르기


왕족 의 장례식때 쓰는 음식과 고기.


왕릉 지키는 수호 돌상


최초 북 감리교 정동 교회. 亞扁說羅가 세운다.


미국 영사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