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미술관

이부탐춘(嫠婦耽春)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덕여 (悳汝) 2011. 8. 28. 17:45

 

 

   이부탐춘(婦耽春)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신윤복 申潤福 (1758~?) 자는 입부(笠夫). 호는 혜원(蕙園).
                                       지본채색, 35.6×28.2㎝,  간송미술관 소장

 

  '이부탐춘' 은 '혜원전신첩' 에 들어 있는 30폭의 연작(連作) 풍속화 중 하나이다. 

  유교 이념에 철저하였던 조선 사회는 여인들에게 한 지아비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였기에, 배우자가 죽게 되면 여인은 평생토록 수절해야만 했다. 그래서 청상과부를 둔 사대부 가문에서는 집안의 가장 내밀한 곳에 별당(別堂)을 마련하여 거처로 삼게 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가능한 차단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겹겹의 높은 담장으로 어찌 무르익은 봄기운의 내침(來侵)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담장 밖에서 넘어 들어온 나뭇가지에는 복사꽃과 살구꽃이 피어나 농염함을 다툰다. 춘기(春氣)를 못이긴 한 쌍의 개는 담장 아래로 난 구멍으로 찾아들어 운우지락(雲雨之樂)에 빠져 있고, 이에 뒤질세라 참새 한 쌍도 부산한 날갯짓으로 서로를 희롱한다. 

  잠시 봄볕을 쐬러 후원 마당에 나온 청상과부와 시비(侍婢)는 이 춘정 가득한 봄날의 정경에 넋을 놓고 눈을 떼지 못한다. 소복을 입은 과부의 헤벌어진 품새와 야릇한 표정에서 농익은 춘심(春心)이 묻어나고, 옆에 앉은 과년한 댕기머리 시비는 뽀로통한 표정으로 짐짓 못마땅한 체하지만,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앙증맞은 손이 그녀의 심경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누가 보아도 고개를 돌릴 만한 민망한 광경이지만, 혜원은 별당 후원의 은밀함을 역으로 이용하여 여과 없이 화면에 펼쳐 놓았다. 이런 정황이니 수절 과부의 절개는 그녀가 앉아 있는 앙상한 가지의 늙은 소나무만큼이나 애처롭고 위태하게만 느껴진다. 담장 밖의 화려한 복사꽃 가지와 대비시켜 굳이 이런 늙고 볼품없는 소나무 둥치에 수절 과부를 앉혀 놓은 혜원의 의도를 알 만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한 비판의식'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오히려 이런 내밀한 내용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고, 즐기는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조선 후기 문화가 절정기를 지나 내리막길로 치달아 조락해가는 현상이다. 혜원의 그림은 찬란하게 노을 지며 저물어 가는 진경시대가 빚어낸 결정(結晶)이다. 그래서 혜원의 그림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감탄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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