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미술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 감상

덕여 (悳汝) 2011. 9. 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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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金基昶]

  1913. 02. 18 서울~2001. 01. 23 충북 청원.

  동양화가. 호는 운보(雲甫). 7세 때 장티푸스로 언어불능에 청각까지 잃었으나,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워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첫 입선했다. 연달아 4회 특선을 했으며, 24세 때 선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해방 전에는 김은호의 영향으로 정확한 선묘와 설채(設彩)를 바탕으로 한 인물화와 자연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널뛰기〉(1931)·〈물새〉(1932)·〈여 女〉(1932)·〈정청 靜聽〉(1933)·〈금운 琴韻〉(1934) 등 선전에 출품, 입선한 작품이 그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활달한 필법으로 화사한 꽃과 새 등을 소재로 전통을 재해석한다는 평을 받았다. 1950년대부터는 아내인 화가 박래현과 함께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주로 서민적인 내용을 주제로 직선과 면 분할, 담백한 색채를 통한 조형의식을 보여주었다. <황토〉·〈노점〉·〈무당〉·〈구멍가게〉·〈복덕방〉 등이 이때 작품이며 입체적 시각으로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실험정신은 1960년대 중엽 완전한 추상표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시집가는 날〉·〈젊음에의 초대〉·〈유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1968년 해외여행 이후부터는 추상표현의 작품을 중단하고, 먹을 절제해 강인한 주제의식을 뚜렷이 드러낸 〈나비의 꿈〉·〈태양을 먹은 새〉 등을 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청록산수(靑綠山水) 연작, 아내의 죽음 이후에는 바보산수(山水) 연작, 민화풍의 화조 등을 제작했다. 〈새벽 종소리〉와 같은 바보산수와 〈쌍계 雙鷄〉·〈부엉이〉 등이 그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작품세계는 계속 변모했으며, 마포걸레로 추상화 대작들을 그려내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국제전에 초대작가로 출품하였고, 개인전뿐만 아니라 1964년 하와이 호놀룰루 동서문화교류센터와 뉴욕 동남아시아 박물관 등에서 초청받아 부부 전시회를 10여회 가졌다. 1971년 3·1문화상을 받았으며, 한국미술대상전과 대한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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