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능환 전 위원장이 두 번이나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첫 번째는, 퇴임 후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의 ‘알바생’으로 일한 것이다. 법조계 고위 공직자가 퇴임 후 ‘전관예우’의 관행에 따라 곧장 로펌으로 직행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의 행보는 충격적이었다. 대법관까지 지낸 그에게 거액의 연봉이 보장된 로펌의 유혹이 분명히 있었을 터인데 이를 뿌리치고 “동네 서점을 운영하면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펼쳤을 때 우리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청렴결백하게 마감하고 ‘편의점 아저씨’로 돌아온 그를 사람들은 현대판 ‘딸깍발이’라 불렀다. 그만큼 그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맹자 시대의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두 번째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편의점 생활 6개월 만에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율촌의 고문 변호사로 ‘전직(轉職)’한 사건이다. 편의점을 떠나면서 그가 던진 말은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맹자』의 구절이다. 이 말은 맹자가 제(齊) 선왕(宣王)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요결을 가르친 것인데, ‘항산’은 가축이나 농토와 같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재산을 뜻하고, ‘항심’은 인간의 착한[善] 본성을 뜻한다. 기본적인 재산이 없으면 백성들이 착한 본성을 잃고 온갖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니, 먼저 백성들의 기본 재산을 마련해주어야 나라가 잘 다스려 지고 그런 연후에야 천하에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맹자는 또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오직 선비[士] 뿐이다”라 말했다.
그렇다면 김능환씨를 일반 백성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선비로 보아야 할까? 일반 백성으로 본다면 그는 적어도 항산을 가진 사람이다. 집도 있고 편의점도 소유하고 있다. 이만하면 기본적인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그러니 ‘항심을 지키기 위하여 로펌으로 간다’는 말은 맹자적 관점에서 보면 좀 어폐가 있다. 한편 그를 선비로 본다면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 역시 맹자의 본뜻과는 어긋난다. 그러므로 그가 편의점을 떠난 이유를 “무항산 무항심” 때문이라 한 것은, 『맹자』의 문맥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김능환씨의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그렇다고 해서 내가 김능환씨의 로펌행을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잘한 일이라 칭찬해주고 싶다. 전문적 지식과 경륜, 그리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그와 같은 사람이 편의점 아저씨로 생을 마친다면 이야말로 국가적 손실이 아니겠는가. 사실상 그는 애초에 편의점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다른 일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그것도 없고 평생 해왔던 영역에서 일을 하는 게 맞는다고 봤다”라 말했다. 그렇다. 그는 편의점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하려는 “다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항산(恒産)이 없었던 것이라 믿고 싶다. 굳이 맹자 시대의 항산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가 하려고 했던 “다른 일”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동네 서점을 운영하면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일이라 믿고 싶다. 그래야 6개월의 편의점 생활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편의점을 떠나면서 그는 “서민의 삶에서 꿈꾸던 만큼의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 앞으로는 “다른 일”을 하면서 그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미래의 어느 날,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무료 법률상담 봉사를 하고 있는 평범한 서민 김능환씨를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