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노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상은 맹자에 와서 구체성을 갖는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와 맹자의 대화를 들어보자. 선왕은 어느 날 맹자에게 왕도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맹자의 답인즉 이러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홀아비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사람을 과부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은 홀로 된 고독한 사람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문왕(文王)이 정치를 시작하고 인(仁)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부터 먼저 보살피셨습니다. 그래서 『시경(詩經)』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괜찮겠지만, 이 곤궁한 사람들이 불쌍하구나.’ ”(『맹자』 「梁惠王下」)
사회적 약자…보듬고 안아줘야
나는 맹자의 이 부분이 유가 사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성인의 예법 운운하면서 번문욕례(繁文縟禮)를 지껄이고, 왈리왈기(曰理曰氣) 따위의 애매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은 유가가 아니다. 유가는 곧 정치고, 그 정치가 우선 배려해야 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삶,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삶, 늙어서 자식 하나 없는 삶,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라. 전근대 사회에서 아내와 남편, 자식, 부모는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가족과 함께 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천하의 의지할 데 없는 네 부류 중에서 셋이 가족이 없는 노인이다. 문왕의 어진 정치는 바로 노인을 먼저 배려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문왕과 맹자의 시대, 그리고 유교를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을 거쳐 이제 우리는 풍요롭기 짝이 없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가? 요양병원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다. 노년을 보낼 곳이 가족의 보살핌이 있는 나의 집이 아니라, 병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진행된 엄연한 현실이다. 노년의 삶은 삶이 아니게 된 것이다.
노년의 가장 큰 공포는 돈이 없는 것이다. 이 야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노년이란 그야말로 저주받은 삶이 된다. 노동력이 소진된 인간,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인간을 배려할 곳은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보살핌도 없는, 홀로 맞이하는 죽음, 곧 고독사(孤獨死)란 어휘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비극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층에게 월 20만 원씩 기초노령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가 부담하겠다고 하였다. 이런 공약이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 노인의 삶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공약을 그대로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왕이 천하 의지할 데 없는 노인을 위해 펼친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좋은 정치란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거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