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이것이 일본의 실체다/일본의 만행

덕여 (悳汝) 2011. 7. 15. 14:33

 

 

이것이 일본의 실체 입니다.

 

우리의 선열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일본군의 잔학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한 총칼에 순직하였습니다.

일본은 1880년경 부터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일본군을 주둔시켜

각가지 만행을 자행한 후 결국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아 점령하더니,

그래도 모자라 다시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점령 할려고 합니다.

강점 36년 동안에 자행한 일본의 만행을 들추어 전 세계에 고발을 합시다.

끔찍한 사진이 많으니 심장이 약한 분은 주의가 필요 합니다.

  

광복 독립군과 독립투사,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인에 체포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년 이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인다.

 

독립투사 또는 양민을 학살 하기 위하여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인놈들.

 

독립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가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일본군놈의 장칼에 목이 떨어지는 독립군.

 

일본군놈들에 끌려 가는 독립군 의병장.

 

무기도 빈약하고 의복도 남루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놈들을 해치워야겠다는 의기투철한 의병대들 모습.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 쪽으로 끌고가고 있다.
이미 총검에는 선혈이 묻어 있다.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다.
칼로 목을 칠때 넘어가지 않도록 팔을 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총살로 생을 마친다.

 

독립군간부의 처형 장면이다.

목을 치기 전 뒷편 일본군의 웃는 모습에서

분노보다 비열한 일본의 양심을 목도하게 한다.

 

독립군병사의 목을 작두로 잘라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추운겨울 날씨로 오랫동안 매달아 놓고 공포심을 주기위해

인간이 할 수 없는 최악의 만행을 자행했다.

 

죽은 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했다.
온마을이 유해로 가득하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일본군인놈들은 민간인까지 처형했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까지 보이는 것은

사람을 장난삼아 학살하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일본놈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밑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있다.
독립군용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은 모습이다.

 

일본놈들은 잔혹하게도 양민들을 생매장하고 있다.

 

일본군의관이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않고 손을 묶고 해부하여 창자와 내용물이 나왔다.
일본놈들은 입에 마스크를 하고 지켜 보고 있다.

 

일본군들이 처형할 때 목에 감아 놓은 수건은
칼로 목을 칠때 잘린 몸통에서 품어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감아 놓은 것입니다.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하의가 벗겨진 지독한 고문뒤에 죽임을 당한 한국인들.


 

우리 한국인들은 나무 벌목 등 혹독한 노역후에는 모두 죽인을 당했다.

 

총검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
일본인 입가의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장면. 천벌을 받을 놈들이다.

 

일본도로 목을 자를려고 고개를 새우고 있다.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 상태.

 

독립군의 목이 잘린 순간.

 

살륙한 두 병사가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찰영.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 감시아래 손이 뒤로 묶여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을 가족들이 파헤치고 있다.
죽은 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처형을 기다리는 소년투사.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잔악무도한 일본군들이 양민을 대량 학살하였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가족들이 시신을 찾고 있다.

 

잔혹한 살육 장면(1942년)
여인은 옷이 벗겨지고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이 짤려 얼굴이 등뒤로 돌려져 있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

엉덩이에 총상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일본군이 가리고 촬영하였다.

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

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인놈들은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살기위해 허덕이는사람을 긴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곳으로 몰아넣고 집단학살 후 불태웠다.

 

(1937년) 허탈한 아버지.

학살 당한 어린 자식을 물건처럼 들고있다.

 

참혹하게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군이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 발악을 자행한 흔적들이다.

 

(1938년) 사람 죽이는 시범 실습 현장 장면이다.

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에 동원된 일본군인들은 관심있게 보고 있다.

 

살이 떨리는 공포.

두사람의 양민이 총을 겨누고 고함치는

일본군인에게 두손 모아 애원하는 모습.

 

산더미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집단학살.

가슴에는 죄명아닌 죄명을 달아놓고 사살했다.
얼굴의 선혈을 보아 총살이다.

 

이성잃은 일본군.

일본군인이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부녀자 강간.

일본 병사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고 막대기로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짐작이 간다.

 

갓난아기들의 죽음.

이성을 상실한 일본놈들이 죽인 아이들이 인형처럼 뒹굴고 있다.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학살.

엄마와 함께 도피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사살 현장.

오른쪽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녀자의 절규.

하체를 강압에 의해.(차마 설명 할수 없음)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결국 정신대로 갈것이다. 

 

작두로 목을 짜르는 처형 직전. 

 

작두로 목을 짜르고 있다. 작두 앞에도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잘린 수 많은 양민들의 얼굴.

본군이 목이 잘린 양민의 손을 자신의 목부분을 가르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인에 의한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을 학살하였다. (몽둥이,죽창으로 학살)

 

창고에서 집단독살.

 

노역자는 운송을 마치면 죽음이다.
부릴대로 부려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이렇게 무자비하게 죽였다.

 

3명의 의병 총살 현장.

영국여행가 비숍씨가 촬영하여 영국왕립박물관에 소장된 자료.

서대문형무소 뒤 공동묘지에서 독립의병 3사람이 총살 당하는 모습.

 

일본군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죽여 불태웠다.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선량한 양민을 칼로 처형하는 일본군
 

죽음앞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당당한 독립투사.

 

일본놈들의 만행 차마 볼 수 없다.

 

길거리에서 일본군인 놈에게 강간을 당하고

맞아서 내장이 밖으로 나온 참혹한 모습.

 

일본군 종군위안부(정신대)의 거실 내부

이곳에서 일본군은 성욕을 채웠다.

 

근심이 가득한 한국여성.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로
하는 수 없이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본군의 노리개로 끌려 갔다.

 

종군위안부에게 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 병사들.

 

종군위안부의 음부를 노출하게 하여 찍은 사진.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로 실려가는 위안부.

 

위안부의 휴식시간.

 

 일본병사  근무지에도 불려간 종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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