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나를 울린 제자의 한 마디

덕여 (悳汝) 2013. 9. 14. 20:06

 

 

 

♡나를 울린 제자의 한 마디♡

 

"저는 혼자 크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지요."

녀석, 말도 이쁘게 하네. 그러면서도 가슴이 뭉클하여 주책없이 또 눈물이 난다.

이렇게 잘 컸는데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여 지난했던 세월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난다.

13년이라는 세월을 지켜봤으니 종현이 형제의 성장과정은 물론 그 가족들의 아픔과 애환이 무엇이었는지도 다 셈이다.

 

종현이는 성당 주일학교에서 만났다. 참 착하게 생겼는데 이상하게 한 주는 나왔다 또 한 주는 안

나왔다 하며 오락가락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 날 앉혀놓고 이유를 물었다.

"동생이 컴퓨터중독에 빠져 있어요. 동생 혼자 놔두고 나올 수가 없어요."

동생이 4학년이라고 했다. 부모님에 대해 물으니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시고 엄마가 공장에 다니시며 저희를 키우고 계세요."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아빠가 암으로 투병하다 빚만 잔뜩 남긴 채 돌아가셨다. 홀로 남은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과 아직 취학하지도 않은 작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공장에 취업을 하고 밤낮없이

일을 했다. 큰아이는 학교라도 다녔지만 작은 아이는 혼자 집안에 방치된 채였다. 아이를 유치원

에 보형편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컴퓨터

게임에 빠져 들었고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있었다. 종현이는 이런 동생을 두고 성당에 나올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는 동생을 데리고 오렴. 그렇게 말해놓고 두 아이를 무상으로 맡아줄 학원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아는 이가 흔쾌히 맡겠다고 나섰다. 아이를 둘씩이나 무상으로 맡는다는 게 어디 쉬운가.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며 다짐을 받고 두 아이를 그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기쁘게 공부하는 것 같았지만 컴퓨터 게임만 했던 작은 아이는 많이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

고 있었다. 두 아이들을 맡아 주었던 학원에서 고등학생 반을 없앴기 때문에 큰 아이를 더는 봐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공부를 포기하면 절대로 안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그런데 하늘이 무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다른 학원에서 두 아이를 기꺼이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이들은 학원을 옮겨 갔고 또 다시 '무상'이라는 혜택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혹시나 눈치를 받게 될까봐 시험 때마다 선생님들과 두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어 날랐고 명절이면 선생님의 선물을 꼬박꼬박 준비했다.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 한결같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한 날 종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이제 학원 그만 다니고 혼자 공부할게요."

난데없이 무슨 소린가. 사교육이라고는 그 학원 다니는 게 전부인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면 혼자 어

찌 공부한단 말인가. 아이를 불러다 놓고 물었다.

"선생님들이 눈치 주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다그쳐 묻자 어렵게 입을 연다.

"선생님들이 저희들에게 하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선생님들끼리 하는 말을 들었어요."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애초에 가졌던 좋은 마음은 사라지고 이 두 형제를 귀찮아하고 염치 없다

며 수군거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굳세게 다녀야 한다고 했다. 눈 딱 감고 오직 너희들의 목표만 생각하라고 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마저 하지 않으면 또 어디가서 도움을 받겠는가.

선생님들이 눈치 준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아주 공짜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번엔 성당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전액 지원은 못해도 일부 지원을 받아 그걸로 버텨보기로 했다. 학원 원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해 사과한 다음 실비만 받고 아이들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비루하고 지난했지만 그래도 세월은 흘러갔다. 그 새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어도 대학도 어지간한 곳으로 가게 되었고 형과 3학년 차이인

은 아이 역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 이들의 도움을 다.

4년 동안 매월 일정액을 아이들의 통장에 넣어 준 이들이 있었고(슈퍼마켓을 운영하시는 분들)

 2년 동안 제법 많은 돈을 보내주었던 이들(어느 친목모임)이 있었다. 

이 밖에도 알게 모르게 종현이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웃들이 참 많다. 

모 국회의원이 설립한 장학재단에서는 두 아이들의 학비를 전적으로 대주기도 했다.

두 녀석들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이들의 은혜를 한 시도 잊지 않았다.

쌀이 떨어져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1주일 내내 라면만 먹이는 날도 있을 만큼 가난했던 엄마는 아

들이 크는 동안 두 번씩이나 큰 수술을 받았지만 고마운 이들을 생각하며 꿋꿋이 버텨냈다.

 

수능을 끝낸 다음 날부터 종현이는 식당에서 밤 11시가 넘도록 열심히 써빙을 하고 고기 불판을

으며 학비를 벌었다. 어느 날 종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밥을 사드리고 싶어요."

종현이는 학비가 부담되어 1학년 한 학기만 다니고 군에 입대한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둘이서 고기 2인분을 다 먹지 못했다.

내가 돈을 낼 테니 편히 먹으라고 해도 종현이는 득부득 자신이 내겠다며 우겼고 나는 종현이가 피눈물 나게 번 돈을 그렇게 냉큼 받아 먹을 가 없었던 것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두 아이들의 경제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는 시름거리면서도 회사를 다녀야 했고 두 녀석들은 죽을 힘을 다해 알바를 뛰었지만 한 시도 학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설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종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어요."

졸업할 때가 되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물었더니 취직을 했단다.

아직 채 한 달이 안 되어 월급의 일부만 받았지만 그 돈으로 내게 밥을 사주고 싶어 연락을 했던 것이다.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도 종현이는 운이 좋았기 때문인지 남들보다 더 많이 노

력했기 때문인지 졸업 전에 취업이 되었다.

기쁘다. 종현이가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잘 극복하고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것도, 좋은 회사취업이 된 것도. 그런데 무엇보다 기쁜 건 자신을 도와주었던 이들을 잊지 않고 은혜를 되갚을 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 종현이가 동의 멘트를 날린다.

 

"선생님, 저는 혼자 크지 않았어요. 오늘의 저를 만든 건 선생님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은혜, 잊지 않을게요. 이번 달은 한 달 월급을 다 받지 못해서 힘들지만 다음 달부터는 저희들처럼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려고 해요. 제가 받은 은혜를 세상에 되갚으며 살고 싶어요. "

 

지금 종현이 동생은 학교를 휴학하고 부사관이 되었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끝까지 공부하기 힘들

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남은 공부를 마저 하여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룰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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