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다산포럼/광주는 아프다 - 김정남

덕여 (悳汝) 2013. 6. 26. 10:03

 

제 659 호
광주는 아프다
김 정 남 (언론인)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는 민주정부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복권과 명예회복, 그리고 그 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광주시민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서 고뇌하는 정부입니다. 또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는 1993년 5월 13일, 광주민주화운동 제13주년을 앞두고 이제 막 출범한 문민정부의 YS가 발표한 대통령 대국민특별담화의 머리부분이다. 문민정부로서는 첫 번째 맞는 5.18기념일을 ‘닷새’나 앞두고 ‘특별’히 준비하여 발표한 담화였다. 5.18에 대한 공식명칭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 하고, 문민정부를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는 민주정부’라고 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담화의 초안을 내가 정리했는데, 담화발표를 전후하여 무척이나 설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이 담화를 시작으로 하여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 5.18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 제정, 망월동 묘역의 민주성지화, 기념공원 조성, 기념탑 건립, 상무대 부지의 시민공원화, 사망자와 행불자에 대한 추가신고 접수, 지명수배의 공식해제 및 해직자 복직 등의 조치에 나서게 된다.

  이 담화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상처와 아픔의 치유가 시작된다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치유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그것이 올바른 치유가 되기 위해서는 진실의 규명과 가해자 처벌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다. 이른바 ‘5.18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재판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밝혀지고, 가해자였던 전두환∙노태우 등이 단죄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죄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 없는 불안한 치유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집단적 통회나 배상이 아니라 재심과 무죄를 전제로 하는 개별 보상은 힘깨나 쓰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몫이었고,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뒤로 밀리거나 소외되었다.

5월 증후군에 시달리는 광주

  국가폭력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그 뒤에 나타나는 정신장애(트라우마)를 겪게 마련인데, 이들을 위한 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연 것은 그때로부터 32년이 지난 2012년 10월의 일이었다. 치유가 사람을 중심에 놓지 않고 외형의 물질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최근 광주시민 3,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5.8%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5월이 되면 5.18에 대한 생각이나 그림이 떠오른다고 했고, 43.2%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분노, 슬픔, 죄의식 등 매우 독특하고 강한 정서를 느낀다고 답했다 한다. 예컨대 전두환의 육사사열 소식이 전해진 날에는 분노와 공포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직접적인 피해자들은 증상이 더 심하다.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후유장애 사망자 400여명 중에는 자살자가 46명이나 되고, 광주민주화운동에 참가했던 이들의 자살비율은 10.4%나 된다. 5.18관련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4,000여명 중에 광주에 거주하는 사람 2,200여명 가운데는 기초생활보호자가 48%나 되고, 차상위 계층까지 포함하면 70%에 달한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외상후장애와 사회적 소외, 경제적 빈곤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광주는 아프다. 너무 아프다.

TV조선, 채널A의 망발…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리는 행위

  1997년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적인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국가차원의 추모식이 거행되어오고 있다. 해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행사로 정착되는가 싶더니, 이명박정부 때는 대통령이 취임 첫해를 제외하고는 내리 네 번을 불참했다. 2010년 30주년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대신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이 연주될 뻔한 일이 있었고 올해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은 돼도 제창은 안되는’ 기념식으로 끝났다.

  더 나아가, 광주시민으로 하여금 아프다 못해 가슴을 치게 만드는 것은 종합편성TV 채널에 의한 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600여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였다”(TV조선). “북한군 50여명과 함께 전투를 치르며 장갑차를 몰았다”(채널A)는 방송을 여과없이 내보낸 것이다. 또 특정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그 해 5월의 희생자를 ‘홍어’로 조롱하여 광주시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는 잔인하게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헤집고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런 망발들 속에서 치유는 어떻게 가능하며, 그 영혼인들 언제나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이번 방송은 계산되고 의도된 역사왜곡이요, 국론분열 음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통합과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마땅히 광주시민은 물론 범국민적 응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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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


다산포럼
은 일부 지역신문에 동시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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