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지식

양사언과 그 어머니 이야기

덕여 (悳汝) 2011. 2. 28. 15:41

 

楊士彦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우리는 위 시조를 양사언이 지은 

모든 일은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교훈조의 시조로 알고 있다

 

그러나 kbs 역사 이야기는 이 시조는 그 사연을 자세히 살펴 보면

처절하게 살다간 그의 어머니를 그리는 시라고 주장했다


"楊士彦(양사언)의 어머니"

대저 인간의 성장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恩功(은공)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栗谷(율곡)과 신사임당,만호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양사언과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적다.

꽃 피는 어느 봄날 양사언의 아버지 '양민'이
전라도 영광의 사또로 부임하던 중에

어느 고을을 지날 때  배가 무척 고파서 밥을 먹고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주막도 없고 농번기라  집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 집 저 집 둘러 보던 중에 어느 한 집에서

한 소녀가 공손하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하면서

사또 일행을 안으로 모시고 부지런히 진지를 지어 올렸다.

하는 태도나 말솜씨가 어찌나 어른스러우며 예의 바른지 사또는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식사대접을 잘 받은 젊은 신관 사또 '양민'은 靑扇(청선)과 紅扇(홍선) 두 자루를 꺼내어

"이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가 너에게 채단 대신 주는 것이니

어서 받으라..."하고 소녀에게 건내려하였다.

깜짝 놀란 소녀는 안방으로 뛰어가 장롱을 뒤져 급히 홍보를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

靑扇(청선), 紅扇(홍선)을 거기에 내려 놓으라고 하였다.
어리둥절한 사또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소녀는 "채단을 어찌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두 자루의 부채는 홍보 위에 놓여졌고,
소녀는 잘 싸서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세월이 흘러
사또 '양민'이 이런 저런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사또를 뵙자고 찾아 왔다.

노인은 "몇 년 전 부임행차 때 어느 고을에 들려 식사대접을 받고 그 집 소녀에게

靑扇(청선), 紅扇(홍선) 두 자루를 주고 간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또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은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말한다.

"그 여식이 과년한 제 딸년인데,  시집을 보내려 해도안 가겠다고 해서

그 까닭을 알고자 이렇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 " 그
 정성이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소.

날짜를 잡아 아내로 맞겠소" 하였다. 이 소녀가 바로 楊士彦의 어머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이제부터이다.
사또에게는 정실 부인이 있었고,
부인과의 사이에 '양사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실이된 소녀와의 사이에
士彦(사언)과 사기, 두 아들이 태어난다.
사준, 사언, 사기 , 삼형제는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 났으며,
풍채도 좋아 주변으로부터 칭송이 끊이질 않았으며,

형제애가 깊어 중국의 '소순, 소식, 소철' 삼형제와 비교되기도 했다.

 

정실 부인이 죽자 모든 살림살이를  후처인 사언의 어머니가 맡아 하면서
아들 셋을 훌륭하게 키웠다.

그러나 아들들이 아무리 훌륭하면 뭣하냐 서자들인데...
양사언 어머니의 서러움과 한탄은 하늘에 닿았다.


남편 '양민'의 장례 날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양사언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양씨 가문에 들어와 재주있고 총명하며 풍채도 좋은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첩이 낳았다 하여
서자의 멍에를 벗겨주지 않는다."

그런 다음 적장자인 양사준에게 울면서 부탁한다.
"장차 첩이
죽으면 우리 큰 아드님께서는 석 달 복밖에 입지 않으실 터이고,

그리되면 내가 낳은 두 아들은 서자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돈하여 사람들이 모르게 될 것입니다.

내 이미 마음을 다진 몸 무엇을 주저 하오리까,

내가 죽은 뒤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죽어서도 기꺼이 영감님 곁에 누울 수 있겠습니다." 하고

양사언의 어머니는 가슴에 품고 있던 단검을 꺼내 자결을 하였다.
아들들이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들이 서자의 멍에를 풀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여인,
죽음으로써 부조리한 인간 차별을 타파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楊士彦(양사언)이 더욱 훌륭한 文人(문인)이 되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다.

楊士彦(양사언)은 만호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 3대 名書藝家(명서예가)이자 文人이다.
士彦의 호가 蓬萊(봉래)인데 士彦(사언)이
관직에 올라 지금의 철원 사또로 부임하였고
자연히 지척에 있는 금강산을 자주 찾았고 그
매력에 흠뻑 젖어 살았다.
 
그래서 호도 蓬萊(봉래)라 하였으리라.....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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