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감상하기 - 김문억
부부싸움 감상하기 김문억
남자가 먼저 멸치 함지박을 휙! 엎어 버렸다. 맨바닥으로 흩어진 멸치를 쓸어 담으면서 여자는 계속 공시랑 거렸다. 남자가 다시 동산 만하게 담겨있는 멸치 함지박 하나를 휙 엎어 버렸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여자가 계속 괴성을 지르면서 다시 엎질러진 멸치를 쓸어 담았다.
남자는 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꽉 다물고 결의에 찬 얼굴로 슬슬 왔다 갔다 하다가 이번에는 세 번 재로 멸치 함지박을 휙 집어 던졌다. 저만큼 나가떨어진 멸치 함지박이 때르르 굴렀다. 그리고 남자는 어디론가 휙 사라졌다. 여자는 계속 그 자리를 뒤처리 하면서 혼자서 악을 썼다. 가끔씩 남자가 사라진 쪽을 응시 하면서 경을 읽었다.
마치 교관과 피교육자 사이처럼 멸치 쓸어 담는 교육시간이 되었다. 애꿎은 멸치만 수난을 당하고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멸치 함지박이 하나씩 나가떨어질 때 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녀려앉았다. 마지막으로 집어 던진 함지박이 빙그르르 돌다가 엎어지는 모습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죽 대접 모양이 겹쳐왔다.
시장 바닥은 금방 뒤엉긴 멸치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구경꾼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여기저기서 수근 거리며 혀 차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상한 싸움이었다. 왜 남자는 엎어 놓고 여자는 쓸어 담을까. 잠시 그런 의문을 갖게 되면서 그렇다면 가령 처음부터 여자가 매달리면서 그러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어쩜 남자의 기가 더 살아서 지금보다 더 많은 멸치가 순식간에 엎어지고 말았을까? 아니면 남자가 엎을 때 마다 여자도 따라서 같이 집어 던졌다면?
쓸어 담는 사람도 없고 풍비박산 되었으니 장사 땡 쳤을 것이다. 그 날로 모두 말아먹고 끝장났을지도 모른다. 어쩜 두 사람 관계까지도 파산 되었을지 모른다. 그나마 저런 모양으로 지금까지 장바닥에서 장사를 유지 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여자의 쓸어 담기라는 반복성이 내성이 된 덕일지 모른다.
여자가 불쌍하고 남자가 미웠다.
뒷골목 어느 해장국 집에서 소주잔을 뒤집고 앉아 있을 그 놈을 찾아내서 녹신하게 때려주고 싶었다. 힘없는 여자라고 해서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그 자가 너무 나쁘다. 멸치에 대한 폭력은 바로 여자에 대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멸치가 그렇게 집단으로 패대기쳐지고 있을 때 마다 여자의 가슴뼈가 얼마나 아팠을까.
왜 여자는 나의 상상대로 멸치 함지박을 같이 엎어버리지 못 하는 것일까. 그것이 연약한 여자의 마음인가 아니면 구경꾼 입장에서는 이해 안 되는 어떤 속사정에 묶여 있었던 것인가. 아, 여자의 숙명은 들먹거리지 말자.
내 짐작으로는 만약에 여자도 같이 엎어버렸다면 그 부부는 오래 살지는 못 하고 갈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사람이 엎으면 상대가 그것을 다시 쓸어 담는 행위로 원수 같은 부부의 행위는 끊어지지 않았던 것인가. 파헤치면 쓸어 담는 그 판이한 상대적 행위를 보면서 없는 살림이지만 끝까지 매달려서 평생 원수로 늙어가는 수많은 부부를 생각 해 본다.
밖으로 내 치면 안으로 꺾어 담는 강자와 약자의 부조리한 조합, 이상한 조합, 이상하면서도 때로는 이상할 것도 없는 숙명 같은 조합, 그런 모양으로 엎어지며 찢어진 곳 꿰매고 닦으면서 무지 목매하게 살아온 쌈 꾼 아닌 짝을 생각 해 본다.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힘의 불균형이 인격적 불균형으로 비화된 결과라면 이는 비극이다. 그 여자가 갑자기 더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궁금한 생각에 잡혀 있다가 자리를 뜨는데 아까 그 바쁜 중에 떠올랐던 죽 대접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 여자가 갑자기 더 불쌍해지기 시작한 연장선 끝에 어머니에 관한 추억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말씀이 없는 대신 성격이 욱했던 아버지는 계속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그만 밥상을 번쩍 들어 마당으로 휙 내동댕이쳤다. 어느 그릇은 깨지고 어느 대접은 마당에 서 저 보다 더 큰 원을 숨차게 그리다가 수채 구녕에 가서 엎어졌다.
막내라고 해서 꼭 아버지와 겸상을 하던 내 손에는 숟가락 만 들려 있었고 미처 다 먹지 못한 김치죽 한 그릇이 철없는 나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11월의 짧은 해가 넘어가고 놀이 활활 타던 저녁 무렵이었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눈물을 닦아내던 어머니의 작은 모습이 평생을 두고 궁스럽게 붙어 다닌다.
아버지는 착한 분이었지만 요량 없이 우직스러웠다. 워낙 말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화라고 하는 통로는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대못 질이 되어 있었고 일방적이었다.
부부가 싸울 일이 생기면 어린 자식이나 뭇 시선을 피해 운동장으로 나가던지 노래방에 가서 돈 주고 싸우면 어떨까 싶다.
운동장에서 뒤잽이를 치면 보는 사람 있어도 운동 하는 줄 알 것이고 노래방에서는 마이크가 두 개 있으니까 하나 씩 잡고 큰 소리로 싸워도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싸우다가 말 안 통하면 고래고래 통곡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도 되고 같이 듀엣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돈 낸 시간 안에 다 퍼붓고 나오면 얼마나 속 시원 하겠는가.
이제는 컴퓨터가 생기고 인터넷이 있고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화 시대를 맞고 있다. 싸울 일이 꼭 생기면 점잖게 메일로 주고받는다던가 아니면 각방에 앉아 컴퓨터 채팅으로 싸워도 좋을 것이다.
대중 앞에서 아니면 자식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
어휴! 남 말 하고 있네. 쌈이라면 나도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