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 고 이병철회장의 질문과 차동엽신부의 답변 ◆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하늘과 땅’을 물었다. ‘신과 인간’을 물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물결과 고통의 물결을 번갈아 물었다. 신이 사랑한다는데, 왜 우리는 고통스럽냐고. 신이 있는데, 왜 세상에 악인도 있느냐고. 그걸 물었다.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24개 물음을 담은 질문지.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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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생명이 피어난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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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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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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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천주교’란 과녁을 향하던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종교’라는 더 큰 과녁으로 시위를 돌렸다. 종교가 뭔가, 왜 필요한가, 영혼이란 뭔가, 각 종교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가. 불과 서너 가지 질문에 ‘종교학 개론’의 뼈대가 담겨 있다. |